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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강사가 꿈이던 내가 개발자가 되어 첫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군대 생활관 TV의 ChatGPT 뉴스에서, 가입 19명·체험 0건의 첫 서비스까지
#회고#진로#사이드 프로젝트

꿈은 수학 강사였다

나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는 초등학교 선생님, 중학생 때는 중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다. 중학교 2학년 수학 선생님이 특히 멋있어 보였다. 고등학교에서는 수학연구부에 들어갔고, 꿈은 수학 선생님, 수학자, 금융공학자 쪽을 맴돌았다.

성적은 그 꿈을 받쳐 주지 못했다. 수학과 대신 자율전공학부에 정시로 들어갔다. 그러다 한 수학학원에서 조교 일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쉬운 질문을 받아 주고, 아주 조금 튜터링을 하는 일이었다.

강사 자리 두 곳을 미뤄 두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진로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함께 일하던 강사 선생님은 나를 짝강사로 키울까도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딸린 강사라는 이미지는 10년, 20년 뒤에 아무 힘이 없다며 독립을 권했다. 그리고 강사 자리 두 곳을 소개해 줬다.

많이 고민했다. 강사를 시작하면 대학 생활은 끝이다. 아침에는 수업과 교재 준비, 저녁에는 수업. 그래서 «하고 싶은 다른 걸 먼저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강사를 하자»고 정했다. 그 «다른 것», 나의 세컨드 옵션이 개발자였다.

생활관 TV에서 ChatGPT를 봤다

개발자를 떠올린 건 군대에서였다. 어느 겨울 아침, 생활관 TV 뉴스에 ChatGPT가 나왔다. 어릴 때 심심이랑 대화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바로 사이버지식정보방에 가서 써 봤다. 처음 물어본 건 «소수의 비밀이 뭐야?», «리만 가설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였다. 지금 보면 좀 멍청한 질문이었다. 그래도 전역할 때쯤엔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융합전공을 신청했고, 꿈은 조금씩 개발자 쪽으로 옮겨 갔다.

군대에서 배운 것도 하나 있다. 사람 수가 모자라 축구에 끌려 나갔을 때, 볼 컨트롤도 수비도 못 하니 그냥 맨 앞에서 공격수를 하겠다고 했다. 받으면 차고, 튕겨 나오면 또 찼다. 잘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자리를 먼저 잡는 것. 개발을 시작할 때도 비슷했다.

1년 차, 퇴근 뒤에 서비스를 만들었다

지금은 회사에서 풀스택 개발자로 일한다. 인프라 담당자가 떠난 뒤 AWS 운영까지 맡게 됐고, 그 기록은 청구서를 직접 뜯어 AWS 비용을 줄인 글에 남겼다.

퇴근 뒤에는 부모님 이야기를 남기는 서비스를 혼자 만들고 있다. AI가 전화로 이야기를 여쭙고, 들은 이야기를 글과 만화로 엮는다. 남의 부모님께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해 봤다. 43분 동안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더니 잊고 있던 장면이 줄줄이 나왔다. 그 이야기가 모여 88쪽짜리 만화 책이 됐다. 질문 하나가 기억의 문고리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숫자는 아직 작다

10월 말 기준으로 가입은 19명, 실제로 체험까지 간 사람은 0명이다. 주변에서는 좋다고 말해 주는데, 그 말이 결제나 통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정말 쓸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수학 강사 자리를 미뤄 둔 그때처럼,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다시 정하려고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자리는 맨 앞에서 계속 차 보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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